공포의 페니실린 2년차 일기

수술이 다 끝나갈 무렵, 한 전공의는 "비만도와 수술료는 모름지기 비례해야 한다."고 툴툴거리며 배를 닫고 있었다. 두꺼운 뱃살과 싸우며 배를 닫던 전공의는 실이 끊어지면서 바늘에 손을 찔렸다. 

"앗..따거워!!"

순간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 이 환자 매독......."
"나도 알아요. 흑흑"

젋은 시절 매독 치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그 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지냈다고 했으나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법. 결국 감염관리실에 신고를 하고 나니 프로세스대로 채혈을 하고 응급의학과 선생님과 그 환자의 피검사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얻은 의견은 "꼭 맞아야 하는 적응증은 아니지만 일단은 찝찝하니......"

일단은 찝찝하니 페니실린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저렇게 생긴 약을 증류수에 녹이면 걸쭉한 흰 주사액이 완성된다. 피넛버터로 불릴 정도의 특유의 점도(?) 덕분에 주사약이 들어갈 때 통증도 엄청나거니와, 보통 엉덩이 주사를 맞을 때 쓰는 주사 바늘로 투여하면 십중팔구 주사기 본체와 바늘이 분리되어 약물이 폭발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때문에 18 gauge라는 굵기만 봐도 오마이갓이 절로 나오는 두꺼운 바늘로 엉덩이에 두대를 맞아야 한다니 이럴수가. 

응급실 인턴시절, 매독환자 CPR을 하다가 졸지에 피를 뒤집어쓴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우루루 응급실로 내려와 구석에서 차례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환자들에게 매독 치료 받은 적 있냐고 물으면 대개는 "기억이 안난다"라고 대답하지만 80대 어르신들에게  "예전에 매독이라고 엉덩이에 엄청 아픈 주사 치료받은적 있어요?" 라고 하면 바로 대답을 할 정도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내 부주의를 한탄할 수 밖에.

원망스럽게도 빠른 손놀림으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처방을 냈고, 잠시후 한 간호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찾고 있었다.

"쌤. 이거 엄청 아픈데..ㅋㅋ."
"저좀 살려줘요.ㅠ_ㅠ"
"쌤~ 내가 엉덩이 잘 때려서 안아프게 해줄께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장담은 못해요ㅋㅋ"

잠시후 나 역시 응급실 구석으로 끌려갔고, 18 gauge의 바늘이 엉덩이에 꽂힐 때 1번, 걸쭉한 약이 엉덩이로 들어갈 때 한번. 그리고 그 주사를 2대를 맞아야 했으니 도합 4번의 비명이 나올 찬스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가슴속으로 외쳤다.

"오마이갓...뗌!!!!"

페니실린에의해 다리의 기혈(?)이 막힌 불쌍한 전공의는 다 풀려서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당직실로 돌아갔고, 이후 다른 전공의들과 치맥을하며 자체 통증 조절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고 한다.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난 소중하니까.



덧글

  • 흑염패아르 2014/10/15 22:16 # 답글

    어우...18게이지로...두대라니... 끔찍합니다. ㅠㅠㅠㅠㅠㅠ
  • 흑염패아르 2014/10/16 09:20 #

    근데 저도 약 10여년전에 입원환자분 아침 혈당 체크 하다가 그 분 혈당잰 침에 찔렸는데 차트봤더니 VDRL + 더라구요. 덜컥 겁나는 맘에 수간호사샘께 이야기했는데 그 뒤 별다른 처치를 안해줬다는거. 절 검사하기는 커녕 무슨 감염관리 그런 프로토콜도 없었나봐요. 나름 지역대학병원이었는데 쇼크먹고 저 스스로 따로 검사했네용. 생각해보니 참...어이없는 일이긴 하네요.
  • 카이 2014/10/16 22:09 #

    엉덩이가 뚫리는 느낌..ㅠ
  • 칼스루헤 2014/10/15 22:51 # 답글

    뭔가 불주사 이야기 같은 으으... 언제나 조심!
  • 카이 2014/10/16 22:09 #

    흑흑. 그러니까 고기. (?)
  • 칼스루헤 2014/10/17 09:05 #

    고기!:) 언제 무한연타 고기집으로~
  • 넥판 2014/10/15 23:00 # 답글

  • ㅇㅇ 2014/10/15 23:26 # 삭제

    와 주사바늘이라기 보다는..무슨 흉기삘..;;
  • 카이 2014/10/16 22:09 #

    무기 수준임...ㅠ
  • 위장효과 2014/10/15 23:29 # 답글

    18게이지를 몸에다가 찌를 일이 정말 드문지라...

    하필 VDRL 양성이 걸리다니...기운 내시라!!!!
  • 카이 2014/10/16 22:09 #

    엉엉. ㅠㅠ
  • 위장효과 2014/10/17 23:41 #

    18게이지 니들의 베벨은 사실 여차하면 메스 대용으로도 쓸 수 있는 물건입니다.(뭣이!)

    큰 것에는 못 써도 실크 3-0 정도는 아주 쉽게 끊어버릴 수 있으니 Stitch-out할 때 아주 와따.
  • PLAN B 2014/10/15 23:44 # 답글

    제동기도 채혈하다 매독환자 바늘에 찔려 페니실린을 맞아야 했는데 하는 표현으론 '엉덩이가 떨어져 나가는것 같다'고 표현하더라구요...ㅠ 며칠동안 절뚝거리면서 일하더라는.... 의료인은 정말 언제나 조심해야할것 같아요.ㅠ
  • 카이 2014/10/16 22:10 #

    3-4일 힘들었어요..ㅎ
  • 라비안로즈 2014/10/16 00:21 # 답글

    헐... 이미지 봤는데 뭐.. 무슨 저런걸 ㄷㄷㄷㄷ
    엄청 아프시겠어요 ㅠㅠ
  • 스트로우 2014/10/16 01:17 # 답글

    대박;;;;;; 흉기 수준이네요 ㄷㄷ 조심하세요
  • 좀비 2014/10/16 04:36 # 삭제 답글

    ㅋㅋㅋ 저는 21G로 놓지요 ㅋㅋ 비뇨기과에서 일할때 하도 이런분들이 많이 오시다보니... 저도 처음엔 18G로 놨는데요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21G로도 가능하더라구요 ㅋ 물론 주사 놓기 직전까지 많이 흔들고 절대로 환자가 엉덩이에 힘을 주지 않는다는 상황에서만 가능...<<... 그리고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일단 다들 맞고 나시면 나중에는 단골(?) 환자분들이 그 뒤로 저만 찾았다는 이야기가...<<<-
  • 오징어대마왕 2014/10/16 06:53 # 삭제 답글

    조심하세요!ㅎㅎ
    항상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 2014/10/16 09: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쳇쳇 2014/10/16 10:32 # 답글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을 겪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겁나는 주사네요.. ㅠㅠ
    (카이님 글 항상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
  • 회색사과 2014/10/16 10:45 # 답글

    음 궁금한데...
    조금더 많은 증류수에 녹여서?.. 점도를 좀 낮추면 안되는건가요? ..
    무지한 공돌이다 보니... ... ...
  • 카이 2014/10/16 22:10 #

    근육에 주사하는데 무작정 "액체"를 많이 주사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죠..^^
  • dAzE_kim 2014/10/16 17:36 # 답글

    저도 참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화이팅 !!
    저희 아버지도 성모병원에서 일하시는데.. 흐흐!!
    급 조금의 친근감이 드네요 ~~ ^^
  • 예곰 2014/10/16 20:59 # 답글

    18게이지.....ㄷㄷㄷㄷ 24게이지에익숙한저로썬... ㄷㄷㄷ 그저소름이... ㅠㅠ 토닥토닥 힘내셔요
  • 아마티 2014/10/17 11:03 # 답글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요...혈액 노출후 예방적 투여를 했는데, 하필이면 주사실 간호사가 한번도 페니실린 투여를 해본적이 없는 신규 간호사여서, 그냥 근육주사 주는 것처럼 내 엉덩이에 주사 바늘을 찌르더니, 얼굴이 하애져서는 "선생님 주사가 안들어가요" 하면서 내 엉덩이에 꽂힌 시린지를 그대로 놔두고 도망가버리더라는! 이게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ㅜㅜ. 결국 경험많은 간호사가 다시 와서 18게이지로 가볍게? 주사 성공. 저는 덕분에 엉덩이가 너덜너덜...
  • 카이 2014/10/17 22:11 #

    엉덩이에 주시기가 꽂힌채로.....그야말로 공포...ㄷ ㄷ
  • 교주님 2014/10/19 15:48 # 답글

    18 Gauze로 엉덩이가 뚫리시다니.... 자, 안아프게 궁디팡팡~~(응??)

  • 잘생긴 돌고래 2014/11/27 19:32 # 답글

    위 댓글에 '흑흑 그러니까 고기' 에서 빵터지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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