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70%가 수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2) 의학(태클환영!)

이번 포스트의 제목 : 인체의 70%가 수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사람을 직접 짜 보았다."

이건 초등학교때부터 궁금해하던 질문이었다. 학교에서 인체의 수분비율을 70%정도라고 배우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동물실험을 해서 알아낸 것일까? 카이의 초딩시절에 최첨단 장비가 있을리 없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대학에 와서 알았다. 70%라는 결과는 흔히 "마루타 부대"라고 알려진 곳에서 알아낸 결과인 것이다. 
사람을 직접 짜 보는 실험방법이야 말로 인체의 수분비율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확실한방법이다. 그런데 비윤리+엽기적인 실험방법이다. 

19세기말~20세기에 이르러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은 특히 미생물학과 생리학의 비약적인 발전의 주춧돌이 된다.  이러한 인체실험(특히 미생물학 분야)이 괜히 시행된 것은 아니다. 

코흐라는 당대의 미생물 학자가 있었다. 세균 염색법을 개발하고 동물실험법을 설정하고, 당대의 골칫거리였던 결학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하였던 병원균의 존재를 입증 할때의 어떠한 원칙을 만들었다. 일명 코흐의 4대 원칙이라고 불리며 미생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 병원균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나 동물에서 반드시 발견되어야 한다.
2. 병원균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나 동물로부터 순수배양법에 의하여 분리되어야 한다.
3. 분리된 병원균을 감수성 실험동물에 접종하면 동일한 질병을 일으켜야 한다.
4. 실험적으로 질병을 이르킨 동물로부터 동일한 병원균이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항목은 바로 3번이라고 생각한다. 인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동물에 실험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실험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의 미생물학자들은 코흐의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장애인, 고아, 매춘부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수 많은 실험이 있었겠지만 몇가지 간단하게 나열해 보겠다.

1) 한센(G.A. Hansen): 1880년 병원 여환자에게 나병균 주입  
2) 나이세르(A. Neisser): 1900년 8명의 여환자에게 매독혈청주입

3) 스미도비치(V.V. Smidobich): 1901년 환자들에게 임질, 매독균을 투입

4) 스톡스(J. Stokes): 1937년 살아있는 인플루엔자를 정신지체자들에게 실험

5) 히데요 노구치(H.Noguchi): 400명 환자, 고아, 정신병환자들에게 매독실험(이분이 닥터 노구치)

그리고 국가에 의해서도 비윤리적인 실험이 자행되었다. 일명"터스키기 매독연구"라고 불리는 40여년에 걸친 실험이다.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은 미국 터스키기(Tuskegee)라는 지역의 흑인들 중 상당수가 매독에 많이 걸려 있으며 99%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들에게 있어서 터스키기는 "세계 어느곳에서도 찾기 힘든, 과학 연구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고 "자연상태의 매독, 즉 치료하지 않은 매독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기 위한 실험 계획을 세웠다.


매독은 치료하지 않으면 심혈관질환, 정신질환, 수명의 단축 등을 초래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중보건국은 피험자들을 치료할 계획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지속적으로 관찰만 할 뿐. 25~60세의 흑인 남성 중 매독에 걸린지 5년이 경과했고, 치료받은 적이 없는 환자 412명과, 대조군으로서 건강한 흑인남성 204명을 리스트에 등록시켰다. 

참으로 치사한 방법으로, 연구자였던 백인 의사들은 간호사는 흑인을 고용하여 농촌의 흑인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여하게 하였고, 정부에서 무료로 건강검진, 치료, 음식, 교통수단까지 제공해준다고 홍보하였다. 그당시 미국내에서 흑인의 위치는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으니, 문맹+농촌 소작농이었던 흑인들이라면 얼마나 쉽게 속아넘길수 있었을까. 

백인 의사들은 대부분 문맹이었던 흑인피험자들에게 "당신은 지금 "나쁜 피"라는 병에 걸렸으니 정부에서 치료를 해준다"라고 이야기 하고 정기적으로 피와 뇌척수액을 뽑아갔다. 이 연구는 1936년부터 1973년까지 행해졌고 정기적으로 의학저널에 중간 결과를 보고하였다. 1940년 경 매독치료에 효과적인 페니실린이 개발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이용되었지만 연구자들은 페니실린을 주기는 커녕, 매독의 경과와 부검소견만을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보건소, 미군, 지역사회 의사들이 매독을 치료하려고 시도하면 공중보건국은 오히려 이들에게 공문을 보내어 치료를 막았고 이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들이 쓴 저널은 미국의 수십만명의 의사들이 읽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6년, 공중보건국에서 성병조사를 담당하던 한 연구원이 이 실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고, 내부에 의해 묵살당하자, 공중보건국을 그만 두고, 친구인 신문기자에게 이 실험의 존재를 알렸다. 이 실험의 존재가 알려지자 미국사회는 경악했고 1973년 실험은 마침내 중지되고 생존한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는 등 미국 사회는 떠들석했으니 이 실험에 직접 참여한 의사들은 실험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실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실험에 참가했던 환자와 가족은 미국 정부와 관련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천만달러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97년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와, 의료윤리 연구소의 설립을 약속하며 이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실험은 이게 마지막이 아니다. 그 당시 새로 개발되었던 "백신"은 개발되는 족족 미국내 고아원의 수천, 수만명의 아동들에게 먼저 투여하여 안전성을 확인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계속되었다.

세계 2차 대전시에도 역시, 대규모의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이 자행된다. 

 
 
 
 
 
 


덧글

  • asianote 2010/03/21 10:32 # 답글

    터스커기 매독 실험은 정말 개뻘짓이었던 게 매독에 효과적인 페니실린이 등장했음에도 계속 실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실험목적을 상실(매독 치료)했음에도 계속 실험을 수행한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 카이 2010/03/21 10:37 #

    그당시 공중보건국이 흑인은 아예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한듯 합니다.^^
    아니면 탐구정신이 너무 강했던지, 연구자들이 돌+I였는지...... 제가 생각해도 뻘짓--;;
  • 박이반 2010/03/21 10:42 # 삭제 답글

    그래도 최소한 인류는 발전하는 것같습니다.. 이런글을 보면...
  • 카이 2010/03/21 10:46 #

    ^^
  • 위장효과 2010/03/21 10:44 # 답글

    그래서 미국 남부 지역에서 "나쁜 피"라는 단어가 곧 매독하고 동의어로 쓰이죠. 가끔 가다가 의료진이 다른 의미로 "나쁜 피"라는 단어를 쓰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 카이 2010/03/21 10:45 #

    헛.. 그건 몰랐습니다.^^
    미국가서 "나쁜 피"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되는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v
  • 츤제위집사 2010/03/21 10:49 # 답글

    저 같이 의학을 모르는 사람은 정말 몰르고 살았을 엄청난 진실;;;;
    사람의 인체수분....직접 짜내다니;;;;
    그외에도..미국도 참 무서운 나라 였군요...
    당연히 지금은 그럴리 없겠지만요...ㅎㄷㄷ
  • 카이 2010/03/21 11:05 #

    미국은 지금도 세균무기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죠,,,ㅎㄷㄷ
  • 카린트세이 2010/03/21 13:24 # 답글

    ............. (.........)

    그 옛날 의학의 발전이 상당한 생사람잡기와 삽질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대충이나마 들었는데, 이정도였군요...... 헐...;;
    근대가 지나 현대에까지도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게 참 무섭다 싶습니다..
  • 카이 2010/03/21 15:06 #

    현대의학은 20세기에 이르러 유래없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물론 많은 선구자들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 또한 뒷받침이 되었죠.^^;;
  • 네비아찌 2010/03/21 17:37 # 답글

    터스키기 시험은 일단 시험 시작 당시에는 매독 치료 방법으로 뚜렷한 게 없었으니까 그런 시험을 기획할 수 있었다 쳐도
    페니실린이 나온 후에는 마땅히 중단되었어야 하는데, 정말 해도 너무했지요.
    그리고 막상 시험 참가자들에 대해서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나 객관적 척도를 통한 연구도 시행되지 않았고
    부정기적으로 띄엄띄엄 연구원이 관찰하곤 하는 그런 정도였다니 정말이지 슬픈 일이었습니다.
  • 카이 2010/03/21 17:47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연구원의 용기있는 고발덕분에 중단 될수 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연구원이 없었다면 이 말도 안되는 연구는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백인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했다면 페니실린이 개발되었을 때 바로 연구를 중단했겠지요??^^
  • Niveus 2010/03/21 19:52 # 답글

    ...덕분이라 하기엔 너무 잔혹하지만 1,2차 세계대전으로 의학발전을 한 단계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느낌일뿐입니다.
  • 카이 2010/03/21 20:08 #

    처음뵙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Niveus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 organizer™ 2010/03/21 20:20 # 답글

    >> 미국내 고아원의 수천, 수만명의 아동들에게 먼저 투여하여 안전성을 확인

    요즘은 미쿡인 자체에 대한 인권 개념이 충만해져서 (미쿡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완소하니까...) 제일 만만한 제 3 세계 -- ? -- 국가들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한다지요.
  • 카이 2010/03/21 20:24 #

    이제는 어디까지가 맞는말이고 ,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 로크네스 2010/03/22 00:15 # 답글

    으아니 사람을 직접 짰단 말입니까? 사실이라면 좀 많이 무섭네요.
  • 카이 2010/03/22 00:39 #

    이때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볼 수 있는.....그런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_-;;
    처음뵙는군요^^. 반갑습니다.^^
  • 작은반지 2010/03/25 13:41 # 답글

    ...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는데... 사람을 탈수기에 넣고 돌렸다는데...
    설마 그런식으로 짠 건 아니겠죠 ...?
    왠지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 -;..

    우연히 들려서 흥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_+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카이 2010/03/25 19:46 #

    원심분리기에 돌렸다고도 들었습니다,..-_-;;

    상상은 금지!!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ㅎㅎ
  • 윤구현 2010/07/16 09:52 # 삭제 답글

    그냥 사체를 바싹 말린다음에 무게를 비교하면 수분의 무게가 나오지 않을까요??

    굳이 직접짜보는 수고를 할 필요가....
  • ㅇㅇ 2015/11/03 02:27 # 삭제 답글

    5년전 게시물에 이런 덧글 남겨서 죄송합니다만 진짜로 인간을 짰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죠?
    체액이랑 물이랑 비중이 달라서 짜봐야 무게비교가 큰 의미가 없다는점, 짠다고 해서 완전히 탈수가 안되는 점, 방사선 동위원소를 통해 훨씬 더 편리하게 추정 가능하다는 점,
    아무리 전공의가 되기 전에 학생 시절에 쓴 얘기라지만 의사 지망의 대학생이 이런 비상식적인 얘기를....
    차라리 사람을 말려봤다고 했으면 그럴싸 할텐데...
    물론 이런 실험을 해도 신체조직이 친수성이라 완전건조해도 수분이 남아서 부정확하지만요
  • ㅇㅅ 2021/03/16 09:41 # 삭제

    제가 알기론 원심분리기에 사람 몸을 통채로 넣어 알아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결국 체액 안에서도 비중이 각기 달라 분리가 되는 것이죠. 다른 방법들은 쓴다고 해도 과정이 어려우며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냥 정말 단순한 방법으로 파악한 후 현재까지 그 지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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