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원서 접수 완료(부제: 서울은 무서운 곳이에요) 잡설 의과대학

그저께는 원서접수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어제는 졸업사진때 찍은 증명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재촬영하고, 새벽 4시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평소 내 포스팅에서 볼 수 있듯이, 웃기게 글을 쓰는것은 본인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넘쳐오르는 개그본능을 억누른 채 다소 딱딱한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은 마치 베토벤한테 음악적 재능을 억누른채, 피아노로 학교종이 땡땡땡 연주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일. 덕분에 지지부진하게 자소서를 썼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이틀에 걸쳐 한 이유는 요즘 동아리 운동 시즌이라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9시에 힘겹게 일어나서 씻고 서류를 다시 잘 간추린 뒤, 기차 타러 가는 길에 동사무소에 들러 필요한 몇가지 서류를 더 발급받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 도착하니 뿌연 하늘이 날 반겨주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환승을 하는데, 역시 서울은 정말 큰 동네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카드 찍고 승강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1분이내에 주파할 수 있는 대전과는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지하철역은 지하전던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인턴접수를 받는 건물로 갔는데, 집에서는 지원서를 프린트 할 수 없어서 교육수련부에서 제공하는 컴퓨터로 프린트를 해야 했다. 해당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갑자기 한 여성분이 반가운 얼굴로 날 맞이했다.

"어머, 선생님 축하드려요. 지원서 프린트 할 곳 찾으시는 거죠?"

난 교육수련부의 배려 깊은 서비스에 감동한 채, 그 여성분이 이끄는 대로 전산실로 가서 컴퓨터앞에 앉아서 출력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그 여성분이 내 눈앞에 군데군데 형광펜을 칠한 서류를 꺼냈다. 아뿔싸...... 저승사자보다 무섭다는 찰거머리 3대천황(보험사/카드사/다단계) 중 하나인 카드사 아줌마였던 것이다. 평소에 갈고 닦은 지성과 번뜩이는 재치로 이 난관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빠져나갈 구석을 전혀 만들지 않는 카드사 아줌마의 올가미를 결국 벗어날 수 없었고, 덕분에 나는 모 카드사 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어차피 신용카드도 없었고,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는 생각에 별 미련없이 원서를 접수하고,  MMPI검사를 하고 건물을 나오는데, 갑자기 아주머니 두 분이 양 사이드로 내 팔짱을 끼며 친근하게 나를 제지했다. 왼쪽은 H카드사 아줌마, 오른쪽은 SH카드 아줌마였다. 그 상황을 포착한 경비아저씨의 도움으로 건물을 나오는데 성공했으나, 내 걸음이 다른사람보다 빠름에도 불구하고 아까 내 왼쪽 옆구리를 차지했던 H카드사 아줌마가 축지법을 시전하며 나에게 달려들어 다시한번 팔짱끼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전력질주로 도망을 쳤다. 내가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많은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나같은 촌뜨기에게 서울은 무서운 곳이었다.

원서 접수 기간동안, 저녁이면 다음날 올릴 실적에 부푼 꿈을 안고 열심히 신용카드 가입신청서에 형광펜을 치는 아주머니들은 누군가의 어머니들일테다.그래서인지 싫다라는 감정보다는 연민을 느끼면서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신용카드는 1개만 만들자는 원칙을 세운 이상 그 원칙은 깨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31일에 면접보러 가는데 그 날도 병원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카드사 아주머니들을 어떻게 피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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